ㅁㄷㄹ

2019. 4. 4. 19:18 from




딱히 늦은 시각도 아니건만 눈이 침침해졌다. 마다라는 한 글자를 더 새기고 붓을 내렸다. 눈을 감고 손가락으로 눈두덩이를 가볍게 눌렀다. 눈을 뜨고 하얀 종이를 확인해보니, 썩 나아지지는 않아보였다. 최근 몇 주째 제대로 쉰 적이 없는 몸은 얼른 휴식을 원한다고 아우성이었지만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마다라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 대신 자리 잡고 있는 천막을 걷었다. 좁은 막사 안은 향내가 가득 베여 있었지만 밖의 공기가 통하는 순간 인상이 써질 수밖에 없었다. 밤하늘이 붉게 타오르고 있었으며, 사방이 온통 불바다였다. 피와 불이 어우러진 냄새가 사방에 가득했다.

“나오셨습니까?”

밖을 지키고 있던 보초 하나가 물어왔지만 마다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말주변 없기로 으뜸인 것은 일족 모두가 알고 있는 것이기에 보초도 한 번 더 묻는 짓은 하지 않았다. 흘긋 보초를 훑자, 이번 전투에서 입은 상처 때문인지 어깨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 정도 상처야 흔하니 일부러 괜찮냐고 물을 필요도 없었다.

마다라는 보초를 지나쳐 주위를 걷기 시작했다. 불은 가장 익숙한 것이라, 사방에 퍼진 불꽃을 신경 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무너져가는 집과 천막, 나무에 깔린 사람을 구하기 위해 소리치는 사람들, 동료에게서 세나오는 피를 막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 포로들을 감시하는 사람들, 기도하는 사람들. 그들은 등에 붉은 색과 흰색이 섞인 부채의 문양을 가진, 우치하 일족이었다.

이번 전투는 우치하 일족이 이긴 것이다. 허나 승리한 일족의 모양새가 아니었다.

마다라는 잠시 멈춰 섰다. 좌우를 돌아보니 보이는 것은 그야말로 지옥과 흡사했다.

“패배보다 비참한 승리인가.”

스스로 내뱉고도 그 말에 부정할 수 없는 상황이다. 마다라는 왼손으로는 주먹을 그러쥐고 오른손으로는 눈두덩을 다시 꾹꾹 눌렸다. 역시 침침함은 가시지 않았다.

손을 내린 후, 다시 걷기 시작하니 비참한 승리에 탄식하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렸다. 대게는 죽은 동료의 곁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 내는 소리였다. 마다라는 그들을 잠시 지켜보다 이내 다른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동료가 몇 죽는다 해서 세상이 무너지는 느낌은 받지 않는다. 그저, 가장 높은 지위인 당주가 바라보면 그들은 분명 일어나 인사를 할 게 뻔하니 배려하는 것이다.

비명이 가득한 곳에서 벗어나 나있는 길을 걸으니 점차 조용해져갔다. 정비되지 않은 흙길에 부서진 칼날들이 박혀있다. 대부분 위헙이 될 정도는 아니었지만, 조금 앞에 있는 것들은 위험해 보였다. 치울까말까 생각하다가 보니 그보다 앞에, 다리가 부러진 사람을 부축하며 치료소로 가는 사람이 있다. 부축하는 사람도 옆구리를 베여, 옷을 찢어 묶어둔 상태로 둘 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서로 조금만 버티라며 위로하는 소리가 들렸다. 치료소는 아까까지 머물던 막사 바로 뒤편이라 위협이 될 요소는 없었다. 마다라는 소매 안쪽에서 그곳에서 받은 하얀 붕대를 꺼냈다. 길이도 짧아 몇 번 감으면 동날 수준이었지만, 이것마저도 지위가 있기에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한 손에 붕대를 쥔 마다라는 길에 박힌 날들을 발로 차기 시작했다. 세로로 박힌 칼은 뽑아 옆으로 던지고, 깨진 것들을 밟아서 부쉈다. 그것들을 부수면서, 이 길로 지나온 부상자들의 피를 머금은 빛에 혐오감이 느껴졌다. 길을 정리한 후, 마다라는 다시 걸었다. 그를 알아본 두 부상자가 당황하는 게 보이자, 그는 들고 있던 붕대를 앞으로 던졌다.

“받아라.”

붕대를 받고서 어쩔 줄 몰라 서로를 바라보기만 하는 둘의 모습에도 더 이상의 말은 없었다. 받으라는 말 외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옆을 지나쳐가는 당주의 모습에 두 부상자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마다라는 조금 더 걸어보기로 했다. 자정이 지나면, 내일이 되면 여기를 뜰 수 있다. 내일까지만 버티면 모두 살 수 있다. 하지만 몇 시간 전까지 이어진 전투 탓에 살아 돌아갈 사람이 많지 않다. 걸으면 걸을수록 보이는 것은 죽어가거나, 죽은 사람들뿐이다.

걷고 걸어 사람이 모여 있는 장소에서 가장 반대편에 있는 곳까지 오니 보이는 것이 없었다. 검은 재밖에 없어 사람도, 식물도, 무기도 아무것도 없었다. 완전히 죽어버린 땅이었다.

거기까지 가고나니 더 갈 데가 없었다. 마다라는 그제야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처음으로 뒤를 돌았다. 왔던 길을 그대로 걸어 다시 막사에 도착했다. 천막을 걷어 안으로 들어가니 짙은 향내가 온몸을 나른하게 감쌌다. 마다라는 깊게 숨을 들이키고 천천히 내쉬었다. 그리고 책상 옆 펼쳐진 이부자리에 털썩 엎어져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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