ㅎㅅㅁㄷ

2019. 4. 2. 00:09 from



 그때 녀석이 내 뒤에서 칼을 찔러 넣은 것이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살아있다. 만약 정면에서 찔렸다면. 아니, 내가 죽었는지 확인이라도 했다면 나는 진짜로 죽었겠지.

그 빗속에서 한참동안 쓰러져있다 겨우 깨어나 기다시피 움직여 향한 곳은 내가 마을을 떠난 뒤로 살던 산속의 폐가 같은 집이었다. 비는 계속 내렸고, 그 덕에 내 발소리는 묻힐 수 있었다. 집으로 향하면서 그 전투의 흔적들을 돌아보기도 했다. 무슨 미련에선지. 어쩌면 뒤늦게 시체의 존재가 떠오른 녀석의 추격대가 따라붙을까 겁이 나서일지도 모른다.


결과적으로, 추격대는 따라붙지 않았지만 더 심한 것이 따라붙었다.


어차피 모든 것을 버렸기에 호화로운 생활을 바라지는 않았다. 사실 더 이상 집의 존재조차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을 때, 우연히 발견한 그 폐가는 요긴하게 사용하고 있었다. 폐가주제에, 겉으로는 다 쓰러져가는 모습임에도 안에서 몇 번 손을 보니 비도 거의 세지 않았다. 그래서 괜찮은 집이라고 생각했다.

그날, 철철 흐르는 피를 옷을 찢어 간신히 지혈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집 앞에는 녀석이 있었다. 거세게 내리치는 비 때문에 내 소리가 들리지 않았는지, 아니면 나를 이미 죽였다고 생각했기에 경계를 풀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녀석은 있었다. 집 앞에서 문 앞에서 집을 빤히 보고만 있었다. 안이 보이는 것도 아닐 텐데도.

어째서 녀석이 내 집 앞에 있는 것이지? 내가 그 폐가 같은 집에 살고 있다는 것은, 나 이외에는 그 어떤 인간도 알지 못하는 것인데. 사람이 산다고는 도무지 생각되지 않는 모습에 가끔 나조차도 돌아오면 놀라곤 했던, 그런 모습이었는데.


더 이상 싸울 힘은커녕 움직일 힘조차 없었기에 더 다가가는 것을 포기하고 집 근처의 굵직한 나무에 기대앉았다. 본능적으로 숨을 죽였지만, 그래도 평소보다는 거칠었다. 녀석이 얼른 떠나기를 기다렸다. 그저 녀석이 모든 싸움이 끝났으니 혹여 다른 습격이 있을까 탐색하는 것이길 바랐다. 조금이라도 움직일 힘이 생긴다면 최대한 기척을 죽이고 그곳을 벗어날 생각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음에도, 내 몸은 녀석의 강함을 알고 있기에 자연스레 단검을 그러쥐었다. 녀석에게 들키면 녀석을 찌르기 위해서.


비는 계속 내렸고, 점차 의식도 옅어졌다. 역시 출혈이 문제였다. 집안에 들어갈 수라도 있으면 몸을 말리고, 붕대를 갈고, 휴식을 취하겠지만 고작 집에서 스무 걸음 남짓 떨어진 곳에서 이러고 있으니 한심해서 웃음이 나왔다. 물론 그마저도 힘들어 속으로 삼킬 뿐이었고.

도대체, 녀석은 언제 떠나려고 계속 비를 맞으며 서있는 것인가. 차마 나무 너머를 볼 엄두가 나지 않아, 사라지는 체온에 떨고 있었다.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냥 가만히 있었다. 그러다 불이라도 피울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따뜻한 것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만 했을 뿐인데, 무의식적으로 손은 인을 맺고 있었다. 차크라만 불어넣으면 바로 불이 튀어나올 정도였다. 잠시 두 손을 보다가 천천히 인을 풀었다. 사실, 그때엔 남은 차크라도 없었다.


한 십오 분 정도 지났는지, 그제야 비가 멎기 시작했다. 분명 비가 그치면 나에게도 다행인 상황이지만, 혹여 빗소리가 사라지면 녀석에게 들킬까 한편으로는 걱정이 일었다. 당장 도망가야 되지 않을까 싶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그건 분명 두려움이었다. 바로 그 직전 이미 누군가에게는 죽어버린 인물이 되어버렸는데도, 두려웠다. 무엇이 그리 두려웠는지 지금 생각해봐도 마땅히 떠오르는 것은 많지 않았다.

이윽고 녀석의 목소리가 들렸다.


……목둔.”


유난히도 떨리는 목소리는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목둔이라니.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 기술을 말하는가. 아예 집을 날려버릴 셈인가. 물론 주운 집인 만큼, 애착이 깊은 것은 아니다. 굳이 그 집이 아니라도 다른 곳으로 가버리면 되고. 그러나 녀석의 다음 말은 들리지 않았다. 그냥 해본 소리인가? 녀석은 내가 바로 근처에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름에도, 나는 들킬까 겁나 숨을 참았었다. 빠르게 뛰는 심장소리가 그렇게 거슬릴 때가 없었던 것 같았다.


숨을 몇 분간 참은 것 같았다. 숨이 막혀 가까스로 뱉어내어, 천천히 숨을 들이켰다. 그쯤 되니 차라리 녀석이 집을 부수던, 태워버리던 원하는 대로 해버리고 떠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는 멎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내리고 있었다. 빗물에 씻어져버린 체온은 돌아오지 않아, 점점 더 온몸을 떨게만 됐다. 조금의 소리도 내지 않기 위해서 이를 악 물었다. 작은 신음하나 나올까 겁나 손에 쥔 검의 날을 보았다. 여기서 들키면, 그야말로 개죽음이라고 끊임없이 생각하면서.


다시 몇 분 정도 지나자, 차라리 먼저 기습을 해버릴까 싶었다. 가장 좋은 상황은, 내가 이러는 동안 녀석이 떠났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이 기습이 성공하는 것이다. 녀석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계속 한곳만 바라보고 있었다. 뒤에서 재빨리 기습한다면최대로는 녀석의 죽음, 최소한 치명상 정도는 입힐 수 있을 것 같았다.


일단은 녀석의 유일한 라이벌이자, 이 세계의 일인자, 혹은 이인자의 자리에 서게 되었던 나였다. 그럼에도 내가 처했던 상황이 얼마나 최악이기에 그런 판단을 했었을까 싶었다. 하지만 다시 그런 상황이 온다면? 생각 좀 해봤는데, 다시 그런 상황은 오지 않을 거니까 답은 구하지 않았다.


녀석을 죽이자. 못해도 나는 녀석에게는 죽은 사람 취급이고, 실제로 그만큼의 치명상을 입은 상태였다. 멀쩡한 상태로 녀석을 기습해도 이길 수 있을지 장담하지 못하는데, 이런 상태로 기습한다? 멍청아, 무슨 생각이야. 고통은 둘째 치고 녀석에게 다가가는 동안 기척을 숨길 상황이라도 돼? 아니, 그동안 숨이라도 참을 수 있냐고. 차라리 도망쳐. 살 확률은 그게 더 높다고? 그래. 분명 이성적으로 판단한다면 도망만이 살 길이다. 하지만, 지금 녀석은 내가 죽었으니, 뒤에서 나타날 리 없다고 생각하는 중이잖아. 믿을 건 그것밖에 없어. 게다가, 이 장소는 나 외엔 아무도 몰랐던 곳이니까, 설마 누군가 나타나리라고 생각하진 않겠지. 그러니까

어차피 살거나 죽거나.

성공하거나 실패하거나.

일인자가 되든가 실패하던가.

그것 외엔 제대로 된 사고를 구사할 수조차 없었던지, 결국 도박을 하기로 했는지 일어서고야 말았다.

하지만 그때 들린 목소리는, 조금 전과 같았던 목소리였다.


……마다라.”


설마, 나를 알아 챈 것인가. 반사적으로 움찔거린 탓에 쥐고 있던 단검이 떨어질 뻔 했다. 가까스로 떨어뜨리지 않은 채 이를 악물고 숨을 들이켰다. 조용히 기습이 안 된다면, 차라리 당황시켜서 녀석이 어떻게 할 틈도 없이 죽여 버리자. 그것도 아니면 이번에야말로 죽자고 생각하고 덤비자. 차라리 그렇게 해버리는 것이 나으리라.

지금, 지금, 지금? 무엇을 결정할 때에 이렇게 망설이고 두려워했던 적은 처음이나 마찬가지였다. 까마득한 옛날, 처음으로 사람을 죽이는 임무를 받았을 때에도 이보단 쉽게 죽였다. 언제 기습해야 할지 알 수 없으니 점점 조급해져왔다. 아직 녀석이 뒤돌아있을까? 아니, 나를 알아챘나? 그럼, 내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것인가?


하지만 다시 들린 녀석의 말에, 일순 멈추었다.


그 다음에 들린 소리는 발걸음 소리, 녀석이 움직이고 있다는 증거였다. 녀석은 내가 바로 근처에 있다는 것을 결국 눈치 채지 못한 것인가. 결과적으로 나는 살았으니, 녀석이 눈치 채지 못했다는 쪽이 그럴싸했다.

녀석을 처음 만났던 순간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녀석의 목소리가 떨리는 것을 들은 적이 없다. 장난으로라도 녀석의 소리는 떨리는 법이 없었다. 어렸던 나와 녀석이 같이 수련을 하다가 둘 다 떨어졌던 적이 있었다. 개울에 빠져버리고 말아서, 자의는 아니었지만 온몸을 덜덜 떨었어야 했던 때. 그럴 때라도 녀석의 목소리는 떨리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그저 말소리가 떨리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그 강직함이 흔들린 적이 없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녀석의 목소리 뿐 아니라, 녀석이 내는 모든 소리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매번 절벽을 오르다 떨어져도, 그래서 발을 삐었을 때도, 우리가 갈라섰을 때도, 서로에게 칼을 겨뤘을 때도, 심지어 녀석이 나를 찌르는 그 순간에도.

녀석이 나를 죽일 각오로 찔렀던 그 순간에도.


그런 녀석의 소리가 처음으로 흔들렸다.


그 발소리가 사라지고 나서, 나는 곧바로 내리 앉았다. 그때에 들고 있던 단검은 진흙 속에 파묻혔다. 아무리 멍청한 사람이라도 이쯤 되면 알아차릴게 뻔한 상황이었다.

녀석은 그 집에 내가 살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녀석의 소리는 처음으로 떨렸다.


조금 뒤 비는 멈추었다. 다시 일어나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렸는지는 생각하기조차 싫다.








5년 전에 썼던 하시마다에요 그때 좀 길게 쓰려고 했던거 같은데 왜 스토리정리를 안해놨지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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