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ㅂㅌ

2019. 3. 31. 00:35 from

내 역할은 무엇이었을까?

  

 

일 년 내내 비가 내린다는 마을이 있다는 것은 오래 전에 들어서 알고 있었다. 일 년 내내 안개가 끼어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안개 마을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때 오비토는 만약 휴가가 생기면 적어도 그 마을들에는 가지 않겠다며 스승과 동료에게 큰소리를 쳤다. 이제는 그 기억조차 희미해져, 스스로의 의지로 가기 싫었던 두 마을 중 하나인 비마을에 도착했다.

물론 혼자는 아니었다. 저질이라고, 그가 칭하긴 했지만 신체의 절반을 채우고, 아예 몸을 감싸기까지 한 가짜인간과, 그의 의지로 반을 채운 가짜인간도 있었다. 비마을이라는 이름답게 마을에 들어서는 순간 비가 온몸을 젖혔다. 그래서 미리 입고 온 후드의 모자를 썼다. 그 이전에 이미 가짜인간이 온몸을 덮고 있었다. 오른쪽 눈만 빼고.

만약, 다른 상황이었다면 한 번쯤은 마을을 구경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오비토는 계획에 첫발을 내미려는 상황이었다. 질척한 땅의 곳곳에는 물웅덩이가 있었다. 비록 한쪽 눈밖에 없지만, 그 웅덩이들을 볼 때마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비가 내리는 호수나 물웅덩이가 보고 싶어.

죽어버린 린. 언젠가 둘이서 이야기 했을 때, 그녀는 그것이 보고 싶다고 했다. 그녀가 비가 내리는 호수나 웅덩이를 보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렇다면 자신이 그녀가 보고 싶다고 했던 모든 것을 대신 볼 것이다. 이 세계가 아직 존재할 때 까지는.

 

[오비토. 곧 도착해.]

 

오비토에게 감겨있던 가짜인간이 말했다. 오비토는 웅덩이가 보이도록 내린 시선을 올렸다. 비에 젖은 바위 뒤에 숨어서 절벽을 깎아 만든 아래의 세 명을 보았다. 오비토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사람은, 주황색의 짧은 머리를 한 청년이었다.

 

“…예전의 나 같네.”

[…뭐?]

“…아니. 아무것도 아냐.”

 

오비토의 시야에 들어온 주황머리의 청년은 나머지 두 명에게 뭐라 이야기하고 있었다. 열심히 손까지 움직이면서 설명을 하자, 나머지 두 명은 고개를 젓기도 하고 끄덕이기도 했다. 열정적이다. 순간 든 생각에 오비토는 고개를 한 번 저었다. 그 다음에야 오비토는 나머지 두 사람을 보았다. 먼저 보인 사람은 푸른색 머리카락에 나쁘지 않은 인상을 가진 여자였다.

 

“…우리가 찾아야 할 녀석은?”

 

일단, 오비토는 푸른 머리의 여자가 목적은 아니라는 것은 바로 알아차렸다. 아마 그녀는 자신의 그녀와 같은 역할이리라. 그 생각을 하고서 오비토는 잠시 고개를 저었다. 자신의 그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의 그녀가 덧없이 사라진 듯이 아마 저곳에 있는 여자 역시 언젠가는 사라지리라. 당사자들에게 전혀 미안함조차 없는 상상을 하고서야 가짜인간의 목소리에 대답을 했다.

 

[저기 붉은 머리 보여? 그녀석이 나가토야.]

“마다라의 진짜 눈? 윤회안?”

[응. 나가토가 아주 어릴 때, 몰래 눈을 바꿨지. 녀석은 자신의 눈이라고 믿고 있는 모양이지만.]

 

그 뒤로 가짜인간의 짧은 설명이 이어졌다. 오비토는 한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나가토의 눈을 보았다. 한쪽 눈을 머리카락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쪽 눈은 분명히 보였다. 보랏빛이 감돌고, 나선무늬가 있는 눈. 윤회안.

 

“……이상해.”

[뭐가?]

 

가짜인간의 물음에 오비토는 짧게 침묵하더니 그냥, 하고 대답했다. 사실 우발적으로 나온 말이라, 오비토는 왜 이상하다고 말했는지 스스로도 알지 못했다. [뭐가 이상해?] 가짜인간의 물음에 오비토는 몇 초를 침묵하더니 가자고 말했다. 그 다음에는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해 말했다.

 

“나가토에게 접근하고, 녀석을 이용해서 미수를 모으자. 그 다음엔 마다라를 부활시키고.”

[…준비는 됐어?]

“…응. 가자.”

 

오비토는 감각이 있는 왼쪽 손으로 주먹을 한 번 쥐고는 걷기 시작했다. 뒤이어 가짜인간이 따라왔다. 빗소리에 걷는 소리가 묻힌 것인지, 세 명의 바로 앞까지 다가갔을 때까지 셋은 눈치 채지 못했다. 비로소, 다가가서야 나가토가 오비토와 시선을 맞추었다.

 

“당신은… 누구죠?”

 

나가토와 접촉했다. 이제 이 순간부터 자신은 오비토가 아니다. 오비토라는 존재는 죽었고, 그녀가 존재하는 세상을 만들 때까지는 그의 이름을 빌어야 한다.

오비토는 비가 내리지 않는 안으로 들어와서 말했다.

 

“우치하 마다라.”

 

 

 

─매일 같은 시간에 오겠다. 너도 결국은 이해하게 될 거야.

 

사실 그 말은 충동적으로 건넨 것이나 다름없었다. 시간이야 많기에, 그 말을 지키러 매일 찾아갈 수는 있었다. 어차피 계획을 위해서는 나가토가 필요했기에, 매일 만나러가서 협력을 구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다신 오지 마라.’

 

그 주황머리의 남자가 한 말이었다. 계획에 중요한 것은 나가토인데도, 오비토의 눈에 먼저 들어왔으며 쉽게 사라지지 않는 인상을 준 남자였다. 왜? 스스로에게 되묻자 어딘가 답답한 이질감만 돌아왔다. 그리고 푸른 머리의 여자를 떠올리면, 그녀가 떠올랐다.

 

“도대체 왜?”

[투정은 그만하고, 비를 피하자. 오비토.]

 

가짜인간이 몇 번이나 비를 피하자고 요구해왔지만, 오비토는 듣지 않았다.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진짜로, 왜인지 알 수 없지만 답답하고, 기이한 느낌의 정체를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주황머리는 이름이 뭐지?”

[야히코. 야히코야. 그건 왜?]

“여자는?”

[코난이었나… 그런데, 왜?]

 

자신이 아는 사람들과 이름이 중복되지는 않았다. 생김새가 비슷한 사람도 없었고. 아니, 색으로만 따진다면 비슷한 사람이야 있다. 하지만 그게 기묘한 느낌의 이유는 아닐 거라고, 오비토는 확신했다.

 

[오비토. 언제까지 있을 거야? 차라리 나가토에게 다시 찾아가지?]

“아니. 내일 갈 거야. 매일 찾아가겠다고 했으니까.”

[…그럼 비 좀 피하던가.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그러게. 왜일까. 속으로만 내뱉은 대답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오비토는 고개를 돌려 그 셋이 있던 장소를 바라보았다. 이미 그 셋은 없어진지 오래였다.

 

아카츠키. 조직의 이름. 리더는 야히코. 하지만 능력은 나가토가 우위. 둘의 관계를 조율하고, 정보의 흐름을 조율하는 사람은 코난. 셋의 역할은 정해져 있었다.

 

“역할…인가.”

 

오비토는 실소했다. 알 수 없던 이질감은 일주일이 돼서야 겨우 풀렸다. 왜 야히코가 먼저 눈에 띄었는지, 왜 이질감이 들었는지, 왜 그들을 주시하게 되었는지.

 

“똑같잖아. 우리들이랑…….”

[뭐가?]

“역할이.”

[무슨 역할?]

“저 녀석들이랑 나랑.”

[…사륜안이랑 윤회안?]

“……아니.”

 

아마 가짜인간은 이해할 수 없으리라. 의지도 있고 육체의 능력은 뛰어나지만 결국은 가짜라는 것인지, 가짜인간은 계속 되물었다. 그러니까, 뭐가 비슷하냐니까? 계속되는 질문에 오비토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예전이라면… 아니, 이 몸이 되고 나서 시간이 조금밖에 흐르지 않았던 때. 차라리 그때라면 가짜인간의 질문에 답답해하면서 대답을 확실히 하거나, 화를 내거나 했겠지.

그러나 지금은 대답할 기운조차 사라졌다. 깨달았다고 해야 할지, 너무 늦게 알아차렸다고 해야 할지 알 수는 없지만, 결국은 알았다. 역할. 간단한 단어에 담긴 것을.

야히코는 오비토와 비슷했다. 생김새도 셋 중 유일하게 오비토와 비슷했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성격이었다. 전쟁이 가득한 마을에서도 야히코는 평화와 이해를 주장하고 있었다. 쉽게 정의해서, 열정적이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나가토는 재능이 있다. 그 재능 자체는 본인의 것이 아니지만, 결국 모두가 나가토의 재능으로 알고 있으며 나가토는 그 재능으로 야히코의 뜻에 동조하고 있다. 코난은 그 둘 사이의 홍일점이며, 아마도 그들의 빛이라고, 오비토는 생각했다.

오비토 자신과 그녀 린, 그리고 카카시.

 

“…….”

 

아무 말이라도 좋으니까, 뭐라도 나왔으면 좋겠는데 더 이상의 실소조차 나오지 않았다. 마치 카카시가 린의 심장을 꿰뚫었을 때처럼이나 큰 충격 같았다. 세 명이라는 것에서, 알아차려야 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제는? 그들이 자신들과 같은 역할이라는 것을 알았으니까 말려야 하나? 지켜봐야 하나? 현재 하고 있는 일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모르겠어.”

[뭘?]

“저 중 하나는 죽을 거야.”

[어? 무슨 소리야?]

“‘우치하 오비토’가 죽은 것처럼. 저 중 하나가 죽어야 나가토는 계획의 일부가 될 거야.”

[그럼 죽일까?]

 

역시 가짜인간의 사고로는 이게 한계였다. 하지만 지금은 이 가짜인간의 사고를 닮고 싶었다. 저 셋은 이미 가족인데, 자신에게 린과 카카시와 같이 소중한 존재인데, 그것을 알면서 죽인다? 그-마다라라면 그렇게 하라고 했겠지. 하지만 이해는 해줬을지도 몰랐다.

 

“세상은 잔인해.”

[…마다라도 항상 그 소리던데, 도대체 왜 그런 소리를 하는 거야? 원래 세상은 약육강식이잖아.]

“…….”

 

여태 오비토가 나가토에게 한 말은 모두 그에게 들은 것들이었다. 그가 미래를 본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딱히 스스로도 할 말은 없었고, 할 말이라고는 이 세계는 거짓되었다는 것뿐이니까 미리 할 말 좀 알려달라고 했었다. 그래서 매일 그곳에 있으면서 들었던 말들을 나가토에게 하며 설득을 시도한지 일주일.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은, 아직 자신이 인간의 마음이 제법 있다는 것이다.

 

“내가 여기서 멈추면, 난 린을 만나지 못하겠지?”

[그야 당연하지. 아니면, 마다라의 의지를 잇지 않을 거야?]

“……아니. 린은 죽었어. 그리고… 녀석들은 결국 지키지 못 할 거야.”

[뭐야. 꼭 마다라 같은 말이잖아.]

 

점점, 가짜인간에게 대답하는 횟수가 줄어드는 것 같았다. 하지만 오비토는 일부러 말을 늘리지 않았다.

 

 

똑같은 것을 경험해야만 이해할 수 있을 거야.

 

 

“당신, 또 왔어?”

 

나가토에게서 꽤나 질린다는 듯 들려온 말에 오비토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것에 나가토가 이상하네, 라고 말하며 시선을 옮겼다. 몇 개월 째 계속되는 제의에는 정말로 말밖에 오가지 않았다. 그래서 나가토는 일단 하루에 한 번, 약속된 장소에서 대화만 나누고 돌아와서 코난과 야히코에게 또 다녀왔다는 식의 말만 들려주면 되었다. 그래서, 오늘도 그럴 줄 알았다.

 

“옛날에, 한 소년이 있었다.”

 

항상 오비토가 나가토에게 하는 첫 음절은 ‘아직 생각이 바뀌지 않았나?’였다. 그래서 나가토는 또 그 말이 들려오겠다 싶었지만, 오늘의 오비토는 분위기가 조금 달랐다.

 

“소년은 좋아하는 소녀가 있었지. 소녀의 곁에는 소년과 소녀의 친구인 남자아이가 있었다. 그 남자아이는 소년보다 강하고 책임감이 있었다. 그래서 소년은 남자아이를 이기고 싶어 했지.”

“…….”

“그들에겐 스승이 있었다. 그 셋이 만나게 된 계기도 스승의 제자가 되어서였지. 소년은 그녀를 만난 것이 생에 최고의 행운이라 여겼다.”

 

나가토는 벽에 기대서서 가만히 들었다. 오비토는 쉬지 않고 계속 말했다.

 

“두 소년은 라이벌이며 친구였다. 소년 둘과 소녀, 강한 소년과 재능이 있는 소년, 그 둘을 이어주는 소녀. 그리고 꿈이 있는 소년. 누구와 닮았다고 생각이 들지 않나?”

“……우리의 이야기인가?”

 

그 말에 오비토의 입 꼬리가 올라갔다. 나가토는 눈치가 없는 편은 아닌 것 같다. 오비토는 그 자리에서 한 번 빙글, 돌았다. 여전히 삭막하기 그지없는 장소다. 아무 색도 없고, 아무 소리도 없고, 아무 빛도 없는 장소. 이미 이 세계의 빛은 보이지 않았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지.”

“…….”

“별로 듣고 싶어 하는 것 같지 않은 표정이군.”

“내 입장을 한 번이라도 생각해봤다면, 쉽게 알 수 있을 거야.”

“……결론만 말하지.”

너는 네 동료를 지킬 수 없어. 네 동료 중 하나는 반드시 죽을 거야.

“……무슨 개소리야.”

 

나가토는 눈에 띄게 흉흉해진 분위기로 오비토를 노려보았다. 오비토는 소리없이 웃었다. 비웃음 같기도 하며, 순수한 웃음 같기도 하고, 허탈한 웃음 같기도 했다. 종래에 오비토는 결국 바깥으로 걸어가며, 멀쩡한 손으로 얼굴의 반을 쓸어내렸다. 이제는 웃음이 아니라 울음이 새나오는 것 같았다. 오비토는 울지 않았다. 웃지도 않았다. 그 모든 것은 속에서 이루어졌을 뿐이다.

 

 

 

 

나루토 연재 당시에... 아주 예전에... 오래전에... 몇 년 전에... 썼던 글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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